필인의 음악이야기

Lakota, to Walk the Red Road

리틀윙 2013. 11. 8. 22:51

https://www.youtube.com/watch?v=nW3tB6ux4CM

 

 

0:00 Lakota, To Walk the Red Road

(라코타는 7개 수Sioux 부족이 연대를 맺은 부족연맹체의 이름)

 

0:10 거인이 사는 곳()에서 당신이 늘 바라보는 곳()에 이르기까지 붉은 길은 이어져 있다. 이 선한 길 위로 당신의 부족민들이 발걸음을 내딛을지어다. - 검은 사슴, 오글랄라 수족의 성자

 

0:17 검은 길은 천둥이 사는 곳()에서 태양이 끊임없이 빛을 발하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이 길은 두려움의 길이자 고난과 전쟁의 길이다. - 검은 사슴

 

1:08 붉은 길은 사람들이 손에 손 잡고 원을 지어 서 있는 길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과 영적 세계의 사람들, 죽어서 별이 된 사람들과 동물형제가 된 사람들, 돌이 된 사람들, 강물이 된 사람들, 나무가 된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신성한 원을 이룬다.

 

1:24 붉은 길을 걸으면 당신의 선조를 알게 되고 그들을 불러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1:39 오글랄라 수족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모습

 

 

 

2:42 나는 돌이 되어 여러분들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 크레이지 호스 추장

 

2:47 크레이지 호스의 영혼 속에서

(큰 바위얼굴에 새겨진 미국영웅들에 맞서기 위해 구 소련의 지올코프스키가 블랙힐 산을 깎아 크레이지 호스의 거석상을 만들었다. 외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큰 바위얼굴을 압도하는 모습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자기 부족민에게 약속한 대로 돌이 되어 돌아왔다.)

 

 

 

 

2:55 원대한 꿈을 품어야 한다. 그런 꿈을 품은 사람은 독수리가 파란 창공의 가장 깊숙한 곳을 날듯이 그 꿈을 쫓아야 한다. - 크레이지 호스

 

(사진 속의 인물은 AIM의 전사 레너드 펠티어의 모습. 라코타 사람들은 펠티어를 크레이지 호스의 화신으로 생각한다. 피터 메티에센 이란 작가는 펠티어의 억울한 일생을 이야기로 쓴 책의 제목을 [In the Spirit of Crazy Horse]라 붙였다.)

 

3:09 백인이 우리 땅에 왔을 때 그가 내딛는 발길마다 핏자국을 남겼다. - 붉은 구름

 

3:18 리틀빅혼 전투, 1876

(사진의 왼쪽은 수 족의 위대한 추장 씨팅불, 오른쪽은 백인의 영웅 미 제7기병대의 커스터 장군.

1874, 수 족 영토 내의 블랙 힐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투기꾼들은 미 병력을 앞세워 제 2차 라라미 협정(1868)때 수 족에게 약속했던 땅에 대한 권리를 무효화했다. 187510월 경, 미 정부는 전체 수 족에게 1876131일까지 전원 유폐구역으로 철수할 것이며, 이에 불응 시 응당 대가를 치룰 것이라는 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씨팅불은 블랙힐은 우리 땅이다.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는 답신을 보내 백인과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천명했다. 3,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크레이지 호스를 비롯한 전 수족의 추장들은 강대한 씨팅불의 부족 훙크파파를 향해 캠프를 옮겼다. 이때 훙크파파 족은 연례행사인 태양춤(Sun Dance)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씨팅불은 사흘 동안이나 춤을 추었다. 씨팅불은 뼈를 깎는 듯한 신체적 고통 이후 나타나는 황홀경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노라고 부족민들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귀가 없는 자들이니 나는 이 자들을 그대에게 주겠노라

백인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자들이니 위대한 정령 와칸탕카가 백인들을 인디언에게 내주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미군들이 고개를 늘어뜨린 채 하늘에서 메뚜기처럼 쏟아져 내렸다고 덧붙였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여 미친말이 활약한 두 차례의 전투에서 백인을 물리친다. 특히, 525일 벌어진 리틀 빅혼 전투에서는 인디언 킬러 카스터 장군과 그의 부하 285명 전원을 몰살시키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3:25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 내가 이루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의 약속만을 지켰다. 그들은 우리 땅을 가지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실행했다 - 붉은 구름 추장

 

3:36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유명한 큰 바위 얼굴

 

 

(조지 워싱턴-토마스 제퍼슨-시어도어 루즈벨트-에이브람 링컨과 대비되는 인디언 네 영웅인데, 맨 앞 인물은 모르겠고, 두 번째부터 차례로 씨팅불-제로니모-붉은구름이다.)

 

 

3:40 사람들이 걷는 대지를 그 누구도 매매할 수 없다. - 크레이지 호스

 

3: 48 라코타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언정 그들의 신성한 땅을 팔기를 거부했다.

 

3:55 칼리스 인디언 학교: 백인 복장에 남자 아이들은 단발을 했으며 기독교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이들은 부족 말을 쓰면 매를 맞았으며, 부모의 동의 없이 백인가정에 입양되는 경우도 많았다.

 

4:02 인디언 유폐구역 : 나를 자유롭게 해 주세요. 자유롭게 여행하고, 자유롭게 쉬고, 자유롭게 일하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고, 나의 스승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내 조상의 종교를 자유롭게 믿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4:26 운디드니 학살, 1890

(18901228일 아침, 백인사회에서 가장 큰 축제날인 크리스마스가 막 지났을 무렵, 수족의 영토 운디드 니 근처의 파인릿지에서 인디언을 상대로 한 마지막 학살이 벌어질 참이었다. 학살의 주인공들은 리틀 빅 혼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던 제 7 기병대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유산탄을 장전한 기관총까지 지니고서 인디언들을 포위한 후 무장해제를 명령했다. 인디언들은 순순히 응했고 모두 무장해제 했노라고 알렸다. 그러나 미군 사령관은 인디언의 말을 믿지 않고 부하를 시켜 천막을 수색하게 했다. 미군들이 그렇게도 뒤졌지만 고작 소총 두 자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중 한 자루는 신형 윈체스터였는데, 검은이리라는 귀머거리 전사의 것이었다. 검은이리는 자기가 비싼 돈을 주고 산 총이니 못 내놓겠다고 소리쳤다. 실랑이를 벌이던 중 누가 쏘았는지는 모르지만 총성이 울렸다. 때를 같이해 미군의 무차별 사격이 시작되었다.

파인릿지에 있었던 350명의 인디언 중 300명이 사망했다. 미군도 25명이 죽었지만 대부분 동료 미군의 총알이나 유탄을 맞은 사람들이었다. 부상자들은 인근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때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찢기고 피 흘리는 부상자들을 아래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설교단 위에는 큰 글씨가 쓰인 현수막이 있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Peace on Earth, Charity to Human.”

디 브라운의 역작, [내 영혼을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4:40 붉은 길을 걸으면,

당신은 신이 주신 권리를 갖게 될 겁니다.

기도할 권리,

춤 출 권리,

생각할 권리,

자신을 지킬 권리,

어머니(대문자)를 알 권리

꿈을 꿀 권리

비전을 품을 권리

가르칠 권리

배울 권리

행복에 이르는 권리

잘못을 바로 잡을 권리

진리에 이르는 권리

영적 세계에 이를 권리

 

4:48 오글랄라 라코타 부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글랄라 라코타는 크레이지 호스의 부족)

 

4:56 파인릿지 인디언 유폐구역 입구

 

5:03

The Treaty of Fort Laramie 포트 라라미 협정(1851, 1868)

 

(포트 라라미 협정은 1868년 라코타 부족민들과 미국 사이에 맺은 협정으로 블랙힐과 인근 영토를 라코타의 소유로 하는 것과 사우스 다코타와 와이오밍 그리고 몬타나 주에서 부족민이 사냥할 권리에 대한 인정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블랙힐 산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금 채굴업자와 광부들이 협정을 위반하고 인디언 유폐구역 경계를 침범해오기 시작했다. 이들 백인은 미국 군대를 등에 업고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씨팅불이 이끄는 수 족과 패배를 모르는 커스터가 이끄는 미 제7기병대 간에 전쟁(리틀빅혼 전투)이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 미군이 전멸되지만, 계속되는 전투에서 인디언 부족이 세계 최강 미군을 상대로 이길 순 없었다. 전쟁 후 미국 정부는 1877년에 블랙힐 땅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0년 수 부족은 법정에서 승리했다. 대법원은 블랙힐 땅값으로 1,550만 달러와 함께 103년간 5퍼센트의 이자로 15백만 달러를 수 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라코타 수 족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대신 자기네 영토를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협정위반(폭로) 대열 Trail of Broken Treaties Caravan

 

(디 브라운의 명저 [내 영혼을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아메리카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로로 유명하다. 이렇듯 통한의 아메리카 인디언의 운명은 끝이 난 듯하지만, 지금까지 인디언의 저항 운동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AIM(아메리카 인디언 운동 American Indian Movement)가 있다.

협정위반(폭로) 대열은 AIM1972년에 조직한 저항운동이다. 이 운동의 전략은 역사적으로 인디언에게 폭력과 기만을 자행하여 땅을 갈취한 미정부의 부도덕을 널리 알림으로써 미국 대중들에게 인디언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것인데, 그 전술 가운데 하나가 워싱턴 DC 점거 농성이었다. 이와 더불어 1969년 탈출이 어려운 특수 감옥으로도 유명한 샌 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츠 섬을 점령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끈 적도 있었다.)

 

 

 

5:08 1973, 운디드 니 점령

 

(사회변혁 운동에서 가장 흔하고도 치명적인 이적 행위가 어용 지도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악질 자본가들이 민주 노조를 파괴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이것이다.

1972년 파인릿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리차드 윌슨이라는 부도덕한 인물이 라코타를 대표하는 의장으로 뽑힌 것이다. 윌슨은 오글랄라 부족 수호병사(GOON, the Guardians of the Oglala Nation)라는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정적을 공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AIM과 라코타의 활동가들은 윌슨 탄핵을 위한 청문회가 실패로 돌아가자 마침내 파인릿지에 대한 무장 점거를 시도하는데 이것이 운디드 니 사태로 알려진 사건이다.

1973227, 200명의 라코타() 족 활동가들과 AIM 회원들이 사우스 다코타 주의 작은 마을 운디드 니를 점령했다. 그들은 미국 정부를 향해 옛날에 맺은 협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몇 시간 이내 경찰이 운디드 니를 포위했고 경찰 저지선을 설치했다. 이는 포위된 이들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외부 동조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로부터 71일간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71일이라는 시간은 미국 역사상 시민이 일으킨 최장기간의 소요였다.)

 

5:18

우리 조상의 땅에서 자유로운 부족민으로 71일 동안 머무른 대가는 너무나 컸다.

FBIBIA(인디언 사무국)공포 통치를 부추겼다.

이 사건 후 3년 동안

64건의 살인사건이 미제로 남겨졌고

300건의 추행과 폭력 사건이 있었고

562건의 불법체포가 자행되었다.

(이 모든 것이 연방 경찰의 묵인 하에 윌슨의 사조직 GOON이 보복으로 저지른 폭력행위들이다)

 

 

5:26

1975626, 파인릿지 인디언 유폐구역에서 비극적인 총격사건이 벌어졌다.

 

1976년 이래 지금까지 레너드 펠티어에 대한 불법 투옥이 지속되고 있다.

레너드 펠티어는 AIM 활동가이다. 1975년 파인릿지에서 두 명의 FBI 요원을 사살한 혐의로 일급살인죄가 적용되어 현재까지 종신형을 치르고 있다.

어용 지도자 윌슨을 축출하기 위해 인디언 전사들이 펼친 1973년 파인릿지 점령 사건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윌슨이 거느리는 폭력적인 사병조직(GOON)으로부터 잔인한 보복을 겪어야만 했다. AMI 활동가 레너드 펠티어는 GOON의 폭력행위를 저지시키기 위해서 1975년에 파인릿지에 파견되었다. 같은 해에 두 명의 FBI 요원이 강도사건과 관련한 탐문 수사를 위해 파인릿지에 들어왔다. 거기서 두 요원은 자동차 안에서 총탄 세례를 받고 사망을 한다. 경찰 당국은 유일한 용의자로 레너드 펠티어를 꼽았다. 펠티어는 수많은 알리바이를 댔지만 허사였다.

미국에서 경찰 살해는 이유를 불문하고 일급살인죄로 간주되고 극형에 처해진다. 중요한 것은 법질서와 시민 대중의 정서에 부응하기 위해 살인자가 파악이 안 될 때는 억지로 만들어내서라도 처벌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고한 시민이 일급살인범으로 몰려 사형 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유명한 다큐 영화 [블루 레드 라인]은 이러한 내막을 잘 조명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레너드 펠티어도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또한, 경찰 살해범은 감옥에 가면 엄청난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 간수와 경찰은 모종의 동료의식이 있으니 그 세계에선 교도소 내에선 경찰을 살해하고 감옥에 온 죄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으로 통하는 것이다. 펠티어의 편지에서도 자신이 전문 암살자를 비롯 여러 폭력배들로부터 끔찍한 테러를 당한 경험이 언급되고 있다.

 

 

 

 

5:43

펠티어를 석방하라.

나의 삶은 나의 태양춤이다.

 

 

(오바마 대통령님, 각하께서는 '변화'를 약속하셨습니다. 각하의 약속을 지킬 때가 됐습니다. 레너드 펠티어를 사면해주십시오. 무고한 시민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1944년생인 펠티어가 1975년에 감옥에 들어갔으니 그의 나이 31세 때다. 현재 우리 나이로 일흔에 해당하는 펠티어가 자유의 몸이 되는 유일한 방도는 대통령 특사로 나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클린턴 대통령이 펠티어의 사면을 생각하고 있었건만 FBI 직원들과 가족들이 백악관 앞에서 데모를 하고 하는 통에 철회했다고 한다. 클린턴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에겐 기대도 하지 않았을 터이고, 펠티어의 입장에선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어쩌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질 때까지 세상과 불화해야 한다.” 내 페친의 카톡 글귀가 생각난다.

레너드 펠티어를 위해 세상과 불화하지는 않더라도 이 글을 공유하면 좋겠다.

 

 

5:48

붉은 길을 걸으면 희생과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된다...

붉은 길을 걸으면 미래의 어느 날 당신이 두려움 없이 영적 세계를 건널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