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음악이야기

Clementine

리틀윙 2013. 9. 23. 06:26

이 노래의 우리말 버전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로 시작되지만1), [클레멘타인]의 공간적 배경은 깊은 산골짜기(in a canyon)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시간적 배경은 골드러시라 불리는 역사적 현상과 관계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것이 1492년인데 그로부터 약 100년 뒤부터 북아메리카에도 유럽인들이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만 하더라도 북아메리카에 이주해온 백인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1849년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난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아메리카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골드러시(gold rush)’이다.

노랫말에서 포티나이너(49-er)란 말은 골드러시의 해인 1849년에 금을 캐러 건너온 사람들을 뜻하는데, 노래의 주인공인 클레멘타인의 아버지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주인공 남자는 사랑하는 딸 클레멘타인을 잃게 된다. 자신이 일하는 도중 산꼭대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의 바다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버지, 살려주세요하면서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나와 보니 딸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자신은 헤엄을 못 치기 때문에 두 눈 버젓이 뜬 채 딸이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2).

포티나이너의 대부분은 돈 많은 투자자들에 의해 고용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고된 노동과 향수병으로 그들의 삶은 너무나 힘들고 비참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교통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자체가 엄청난 위험과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입센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자 그리그의 음악으로도 더 유명한 페르퀸트(Peer Gynt)도 미국땅에서 어렵게 캔 황금을 배에 실고 자신의 고국 노르웨이로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하면서 몽땅 잃어버린다. 벼락부자가 되어보겠다는 큰 꿈을 품고 바다 건너가 죽도록 고생하면서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갔다. 그렇게 축 늘어진 이들에게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맞아 떨어져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하여 입에서 입으로 이 안타까운 아버지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그것이 아름다운 구전가요 즉, 민요가 된 것이다.

 

 

 

주1) [클레멘타인]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불려진 까닭은 최초에 이 노래를 우리에게 전한 미국인 선교사가 해안지방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면서 지역주민의 정서에 맞게 노래가사를 고쳐 가르쳤던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지역 특성에 맞게 교재를 재구성한 것이다.

 

주2) 우리나라의 [아리랑]이 그렇듯이, 민요는 여러 가지 버전(version)이 있게 마련이다. 이 노래의 다른 버전에서는 인공호흡만 했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Artificial respiration would have saved my Clementine)”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아마 어찌어찌 해서 클레멘타인을 건져 올렸지만 응급처치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사랑하는 딸을 그만 자신이 죽이고 말았다고 자책하는 안타까운 부성애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