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저작권 이슈에 관한 짧은 생각

리틀윙 2013. 3. 28. 22:20

나는 저작권이라는 것이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는지는 몰라도 인간의 고귀한 창의성이나 예술혼을 오히려 망가뜨린다고 본다. copyright란 기제가 문화산업자본의 이윤을 보증해주는지는 몰라도 예술가의 창작 의지나 열정을 자극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플랜더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 관한 이야기로 내 의견을 개진해보겠다.

주인공 네로는 화가를 꿈꾸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다. 비록 가난해도 정직하게 살았건만 네로는 부유한 여자 친구 아버지로부터 이런저런 오해 속에 멸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희망이었던 미술대회에서 아깝게 1등을 놓쳐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그가 맨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성당 건물. 네로의 필생 소원은 이 성당 벽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 날 밤 네로는 성당지기의 도움으로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

 

 

 

 

드디어, 루벤스의 그림을 봤어. , 나는 이제 죽어도 좋아.”

네로는 성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모마리아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지친 몸을 누인다. 이윽고 필생의 반려견 파트라슈가 들어오고 둘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억압과 질곡으로 점철된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깊은 잠에 빠진다.

 

화면 캡처를 위해 영상을 돌렸지만 이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러나 감동의 눈물과 함께 이 장면에서 어떤 의구심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왜 성당이라는 곳에서 돈을 받고 그림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이다. 화가를 꿈꾸는 가난한 아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예술작품을 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차단하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저작권의 기본 정신에 해당한다.

 

당신이 산 영화표가 올드보이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음악 CD가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정품이 우리 문화산업을 키웁니다.

 

저작권법을 준수하고 불법복제를 근절하고자 만든 공익광고 문구이다. 위의 명제들은 얼핏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작품의 탄생과 물질적 보상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설파하는 위의 논리는 일종의 사기이자 폭력이며 예술가의 영혼과 작가정신을 모독하는 천박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플랜더스의 꿈나무 화가 네로에게 당신이 지불한 관람료가 루벤스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떠들면 그 가난한 아이에게 폭력이 아닐까? 작가인 루벤스가 그 말을 들으면 기뻐할까? 루벤스 그림 속의 주인공 예수님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부자가 천당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힘들다" 한 말씀을 패러디 하면, 당신의 산 정품이 속물적 예술가들과 문화산업자본가들의 부를 살찌우는데 이들이 건강한 예술혼을 갖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무릇 부와 예술의 진정성은 양립하지 않거늘......

교육이 그러하듯, 예술(이 글에서 예술이란 문화산업을 망라한 포괄적 의미로 쓰이는 말임)은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생명으로 한다. 교육이 시장경쟁의 논리에 휘둘리면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이기를 멈추고 천박한 교육상품으로 전락한다. 사실상 천민자본주의 한국의 현재 교육 실태가 그러하다. 고등학생들이 학원에 가서 밤새우고 학교에 와서 잠을 자는 이 꼬락서니가 교육이라 이를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학원에서 아이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는가? 내가 사는 동네 구미에서 모든 학부모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모 사설학원이 유명 학원이 된 이유는 공부를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관리를 잘 해서라고 한다. 그 남다른 명품 관리의 비결은 몽둥이 찜질이라 한다. 애들 쥐 잡듯이 잡아서 일류 대학으로 진학시켜주면 명품 학원이 되는 것이다.

 

 

ⓒ 일간스포츠

 

 

 

 

예술 또한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면 더 이상 예술이기를 멈추고 저질 막장 문화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당신이 산 시디가 보아 같은 딴따라를 양산해내고 이수만 같은 문화산업 재벌의 부를 더욱 살찌우기 때문에나는 저작권 논리에 동의하지 못한다.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걸그룹들의 민망한 옷차림에 춤동작 그리고 헥헥 거리며 오빠...” 어쩌구 해대는 노랫말들이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할 때, 이런 저질 문화산업은 빨리 망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기에 copyright에 동의하지 못한다. 모든 예술(문화산업)은 그 자체로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 천박한 문화상품은 반교육적 역기능을 하고 훌륭한 예술작품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감성과 성품을 기름지게 한다. 예술이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는 말은 예술의 공공성을 웅변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따라서 예술은 시장에 내던져지면 안 된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예술의 공공성은 우리 사회 예술 역량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예술교육기관에의 억세스가 차단되는 사회에서 찬란한 예술적 위업이 꽃 피기 힘들다이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예술가의 길을 걷기는 너무 어렵다. 가난해도 예술적 자질을 갖춘 사람은 국가가 키워줘야 한다.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적 자질을 연마하고 창작열을 불태우도록 후원해줘야 한다. 예술가들을 공적으로 보호하지 않고 시장경제의 논리로 방치하면, 예술가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문화상품을 찍어내는데 자신의 역량을 소진하게 된다. 이것은 예술의 자기소외 self-alienation’. , 예술가가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그치는...... 예술가에게 이 보다 더 슬프고 비참한 운명은 없다. 그리고 예술가의 불행은 전체 사회의 불행이다. 그런 사회는 죽은 시인의 사회다.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훌륭한 예술작품은 공공재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을 팔아서 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당신이 산 시디는 뮤지션을 딴따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예술작품은 공공재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화가를 꿈꾸는 가난한 아이가 훌륭한 예술작품에 쉽게 접근하여 원없이 음미하도록 해야 한다. 애국가를 전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하듯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시민에게 오픈하듯이 문화상품도 사유재로서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공적인 후원 속에서 진정한 예술혼을 추구하도록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예술정신은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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