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선거'에 관하여...

리틀윙 2011. 10. 13. 14:32

- 2010년 10월 게시판에서 어느 선생님과의 토론으로 쓴 글

 

- 앞부분 생략 -

‘현상’과 ‘본질’은 엄연히 다르지만, 현상은 본질의 현상이며 본질은 현상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헤겔의 논리학 - 우리가 보통 ‘변증법’이라 일컫는 - 의 기본 명제죠. 진리(=본질)는 면벽 수도(修道)를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접근할 수 있는 법입니다. 현상과 본질은 다르지만, 본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현상’인 것입니다.

‘선거’는 부르주아 민주사회에서 현실정치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한 ‘현상’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이 자명한 이치를 인정하지 않을 사람 잘 없을 겁니다. 설령 엘리트의 눈에 국민대중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당대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냉정하게 현상해주는 정확한 지표라 봐야 합니다. 2008년 대선이 좋은 예입니다. 이 나라 국민대중은 MB라는 사기꾼이 BBK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선택했습니다. “선거는 진리의 표지가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관점에 따르면, 이는 어리석은 국민의 어리석은 선택이라 하겠으나, 저는 생각을 달리 합니다.

흔히 부르주아 민주정치를 ‘중우정치’란 말로 빗댑니다. 말 그대로 대중은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리석든 말든 민주주의의 발전은 대중의 역량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트들이 “어리석다” 하는 대중집단이 각성하는 만큼 사회는 진보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현재의 민중은 조선시대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에 비해 얼마나 많이 진보해 있습니까? 극우 보수정권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자 온갖 거짓 이데올로기 공작을 펼쳤음에도 지방선거의 결과는 모두가 깜짝 놀랄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선거는 진리의 지표가 아니다”라는 ○○○선생님은 선거와 관련한 올 봄의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합니다.

선거는 당대의 민중이 얼마나 깨어있는가를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역사는 대중이 각성하는 만큼 발전합니다. 선거에서 민중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잘난 엘리트들은 민중을 각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엘리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민중의 의식화, 이른바 ‘민중교육’과 관련하여서는 이 방면의 선구자인 브라질의 파울루 프레이리가 우리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선사하는 바, 우리는 민중에게(to the people) 지도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민중과 더불어(with the people) 길(진리)을 찾아가야 합니다.

 

- 중략 -

 

현실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이유를 민중이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님이 지지하시는 민주노동당은 별 문제가 없는데 민중이 매번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이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예, 물론 저도 민중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어리석든 말든 민중의 역량만큼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민중의 역량을 집단적으로 발휘할 수 대단히 중요하고도 유력한 수단입니다. 민주노총이든 전교조든 소수의 전위대들이 광장에 죽치고 앉아 데모하는 것은 이 사회를 바꾸는데 하등의 도움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진심입니다). 대중을 촛불광장으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선거에 신경을 못 쓰는 근로 대중들을 설득해서 계급투표에 힘쓰도록 도와줘야 합니다(지도가 아니라). 지금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 우리가 주력해야 할 운동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민중의 역량 제고를 위해서도 선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전체적으로 드는 아쉬움은 ‘역사 발전의 변증법적 관점’이 결여돼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앞에서 제가 민중의 역량만큼 사회가 진보한다 했는데, 민중의 역량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 갑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이른바 10년 단위의 굵직한 역사적 계기들(한국전쟁-4월혁명-전태일-광주)을 겪으면서 민중의 의식이 진화되었지만, 파쇼 군사정권기를 지나 문민 정부 들어와 지방자치제가 이루어지면서부터 물리력에 의존한 투쟁은 찾아보기 힘들고 선거투쟁이 전부인 국면입니다. 선거는 민중의 정치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민주주의의 교실입니다. 보다 많은 민중이 보다 진지하게 선거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만큼 이 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입니다.

 

이는, 민중에 의한 선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북한이라는 이상한 나라가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사회주의라는 간판 내건 동네에서 전대미문의 부자 3대 세습이라는 미친 짓거리가 서슴없이 벌어지는데, 그 꼴통 정권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성명서를 내는 민주노동당, 이런 정당을 지지할 민중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민중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당이 어리석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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