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프레이리

Paulo Frerie

리틀윙 2018. 1. 26. 15:54

얼음판 위에 지핀 장작불 같은 격동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도 나는 교육대학이라는 특수성 탓에 데모 한 번 못하고 졸업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대학 같은 대학에선 날마다 학생시위가 이어졌건만 교대라는 우물 속의 개구리였던 나의 일상은 술집과 당구장은 전전한 것이 전부였다(나는 83학번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87년 뒤로는 교대에서도 학생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주변에서 술잔을 권하는 선배는 많았어도 사회과학 책 한 권 권하는 선배가 없었다. 그러다가 88년 첫 발령을 받고 근무하던 해에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이 결성되었고 내 근무지인 경북 의성군의 중등 선배교사들과 접속하여 독서모임에 나갔다. 드디어 내 오랜 숙원인 사회과학 책 권하는 선배를 만난 것이다.

그 독서모임에서 맨 처음 접한 사회과학 책이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이다. 원제목은 [Pedagogy of the Oppressed 피억압자의 교육학]인데, 당시 금기가 만연한 시대상황 때문에 전략적으로 순치된 제목을 썼을 것이다. 한심한 것은, 아직도 이 책은 공식적으로 금서 목록에 들어 있다.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되는 것일까? 88년 당시 사회과학에 갓 입문한 왕초보 학도로서 선배교사의 도움을 받아 더듬더듬 읽어 갔던 책이지만, 지금 나는 이 책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정통한 식견을 지닌 사람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하겠다.

 

이 책을 필두로 사회과학 공부에 푹 빠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갔다. 공교롭게도 내가 사회과학의 세계의 빠졌던 그 시기는 질곡의 이 나라 학교교육을 바꾸기 위해 의로운 현장교사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참교육운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했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불선한 관리자와 치열하게 싸우고 집에 와서는 책과도 치열하게 씨름했다. 근사한 어법으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 하겠는데, 이게 파울루 프레이리의 프락시스 praxis’ 개념이다.

 

내년이면 딱 30년이 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교직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프레이리가 즐겨 쓰는 수사법으로) 덜 추한(less ugly) 세상을 위해 나는 분노하고 연대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투쟁해 왔다. 30년 나의 교직 삶은 치열한 프락시스로 점철되었다.

 

그런 나의 삶이 시나브로 파울루 프레이리를 닮아 있음을 느낀다. 실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그 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학교 일상에서 만나는 어떤 교육현상에 대한 나의 관점은 나도 모르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의 스승과 닮아 있음을 깨닫고선 나도 깜짝 놀라게 된다. 그저께 우리 교실 풍경을 글로 써내려가다가 이 생각이 찾아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프레이리의 생각을 그대로 패러프레이즈 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이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은 필연이라 생각한다. 작년부터 온라인 기반 교사공부모임을 만들어 이끌어 오고 있다. ‘비판교육학 공부모임이다.

 

비판교육학(critical pedagogy)이란 개념은 파울루 프레이리에서 연유한다. 우리 공부의 첫 텍스트도 프레이리의 책을 선정해 공부했다. 3주에 한 번씩 전국 각지에 있는 7명의 교사들이 온라인상에서 웹세미나(웨비나)를 가졌다. 어제 공부를 끝으로 이 모임은 일단락 지었다. 비판교육학세미나는 계속될 것이다.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기 위해 영어원서가 아닌 한글판 책을 텍스트로 선정하고자 한다.

 

파울루 프레이리와 비판교육학, 그리고 비판교육학공부모임에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프로필 사진 설명: 1964년 브라질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투옥 되기 직전 프레이리가 성인 문맹자들을 대상으로 실천한 문해교실(cultural circle) 모습이다. 칠판 앞에 선 교사(coordinator)가 프레이리이고 판서 내용이 그 유명한 프레이리의 문해방법론이다.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