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개돼지 사태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분노의 쟁점을 분명히 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나향욱 정책관의 막장 발언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그의 부적절한 수사법에 매몰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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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자극적인 수사인 ‘개돼지’가 문제인 것일까? 개돼지가 아닌 닭오리였으면 우리 기분이 덜 나빴을 것인가?
개돼지든 닭오리든 우리 사회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품위를 포기한 채 비참한 삶을 연명해 가는 이웃들이 많다. 윤리적 차원에서 이들을 개돼지라 일컬어서는 아니 될 일이지만, 사실관계라는 측면에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이들의 비참한 삶은 절대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에 기인하는 바, 이들의 불행은 이들을 개돼지라 호명한 그 막장 관료가 속한 1퍼센트의 지배 엘리트의 호화로운 삶, ‘개돼지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의 불균형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막장 관료와 나머지 1퍼센트들의 차이는 엄밀히 말해, “민중은 개돼지”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안 내뱉고의 차이밖에 없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 한 것은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프루동이 “부의 본질은 강탈(혹은 도둑질)”이라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부의 총량은 일정한데, 1퍼세트들의 과도한 부의 획득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민중의 개돼지 삶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을 개돼지라 부르고 안 부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1퍼센트의 존재 자체가 죄악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마르크스의 논리가 아니라 예수의 논리다.
개돼지의 삶을 사는 민중이 사람 대접 받는 것은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일뿐이다. 4년에 한번씩 사람대접 해주고 나머지 일상은 착취를 통해 빈곤과 결핍을 강제하는 1퍼센트는 괜찮고, 취중 막장 발언을 한 1퍼센트 신봉자는 인민재판에 회부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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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관료를 비판하는 글을 쓴 어떤 칼럼리스트는, ‘개돼지’보다 ‘신분제’ 발언이 더 나쁘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계급사회라면 몰라도 신분제라 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그래 맞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명시되어 있는데, 조폭도 아니고 이 나라 교육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고위관료가 국가의 정체성을 모독하고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망언을 해댔으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칼럼리스트의 말은 좀 웃긴다. 신분제라는 발언이 헌정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망언이라면, 어디 헌법에 계급사회를 인정하는 약간의 암시라도 있단 말인가? 신분제사회와 계급사회가 뭐가 다른가? 계층이동의 가능성? 70년대라면 몰라도 현재의 한국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역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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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관료의 수사법이 부절절한 것과 무관하게, “개돼지의 삶”은 실재한다.
OECD 내에서 자살률에 관한 한 부동의 1위국을 자랑하는 이 비참한 사회에서 ‘레 미제라블’은 현실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가 분노할 것은 철부지 관료의 수사법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사실성(reality)이다.
그는 분명 우리의 명예를 훼손했다. 알다시피, 명예훼손에는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 있다. 그의 죄를 굳이 규정하자면,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일 뿐이다.
그의 실언을 계기로... 우리는 1퍼센트가 나머지 99퍼센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지... ‘레 미제라블’의 인과관계에 대해 냉철히 짚어보고 이 부조리한 사회가 보다 덜 추한 모습을 띠도록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성찰해 봤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가 고맙다.
천민자본주의가 안겨 주는 달달한 일상에 마비되어(comfortably numb) 개돼지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깨워줘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에 옮기자.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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