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연못의 추억

리틀윙 2016. 5. 19. 08:54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놀라운 경험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했다. 4~5세 무렵 나침반을 본 적이 있는데 자석으로 된 바늘이 항상 한 곳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는 어떤 큰 힘(자기장)이 나침반의 바늘을 당긴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에서 보듯, 어른들에겐 별 것 아닌 평범한 현상이 어린이에게는 경이로움으로 다가갈 수 있고 또 그것이 급기야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아인슈타인의 발견에 견줄 만한 놀라운 경험이 있다.



다섯 살쯤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분들과 함께 소풍을 갔더랬다. 난생 처음으로 나 자신을 자연에 노출시키게 된 것인데, 실로 나는 대구 한 복판(남산동, 현재 악기사가 많은 동네 바로 그 곳)에서 자라 주변 환경이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그 당시엔 먹고 살기가 힘들어 가족 소풍 따위는 기대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부모님들은 돈 벌기 바빠서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놀아야 했다. (사실, 아이들을 던져 놓고 키우는 이 때의 교육방식이 역설적으로 가장 교육적이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어른들의 틀에 끼워 넣고 혹사시키고 있다.)

우리 일행은 교외의 어느 곳에서 버스를 내려 시내를 건너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내 평생 잊지 못할 경이로운 장면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난생 처음으로 물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어린 생명체를 봤는데, 내 눈엔 너무 신기했고 또 귀여웠다. 그런 상황에서 보통의 아이라면 손을 내밀어 잡아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재바른 녀석들이 내 손에 잡혀 들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물고기를 못 잡았을지언정 그리 실망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입장에선 그 녀석들을 만났다는 자체가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던 바깥 세계에서 그리도 귀여운 어린 생명체들이 물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체가 다섯 살 꼬맹이에겐 흥분되는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오는 동요의 노랫말처럼, 집에 돌아와 엄마 곁에 누워도 낮에 놀다 두고 온 어린 친구들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을 그 송사리 떼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급기야 그 날 이후로 처음으로 ‘소원(wish)’이란 개념을 스스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커서 돈 많이 벌어(그 시대의 대부분의 소년들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연못이 딸린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몇 년이 흘러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면서 행정구역이 재획정 되면서 인근의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학교(대구초등학교)에 연못이 있었다. 처음 그 연못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섰을 때 내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너무나 슬프게도 그 앞에는 “연못에 접근금지”라는 푯말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그야 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쇠사슬로 된 울타리와 연못 사이에 자갈을 깔아놓은 공간이 약 3미터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쉽게 말해 울타리를 넘지 않으면 어린 아이의 눈높이로는 연못 속의 생명체를 전혀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접근금지라니?
학교가 무슨 군사시설도 아닌데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물리적 환경에 아이들의 접근을 막는 게 왠 말인가? 행정적 이해관계가 아이들의 행복 위에 군림하는 이게 한국의 학교다! 지금은 그저 웃기기만 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지만 그 때 자연과 생명체에 그토록 설레는 호기심을 가진 어린 아이에게 ‘접근금지’라는 사자성어가 얼마나 큰 폭력으로 다가왔던지......

송사리 떼와의 조우!
오십이 넘은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그 경험은 아인슈타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소중하고도 신비로운 것이었다. 위대한 교육사상가 루소가 말하듯이 자연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며 어릴수록 그 영향력이 지대한 것이다. 비록 아인슈타인과 달리 나의 그것은 내 삶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 경험은 자연에 대한 내 호기심에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지금 이 나이에도 나의 정신세계는 언제나 새롭고 신기한 그 무엇에 대해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좋은 음악을 접할 때면 내 가슴은 늘 설렌다. 이렇듯 남달리 예민한 나의 정서는 아마도...... 어린 시절 그 짜릿한 경험에 힘입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더 흘러도 그때 그 추억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마음 한 켠엔 여전히 그 어린 물고기들과 함께 하고픈 욕구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칠곡나눔숲체원 속에 있는 작은 연못이 아니라 작은 호수를 보면서 그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저 연못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며칠 전에 아마도 그때 나와 비슷한 호기심으로 연못을 찾았다가 빠져서 옷을 버린 1학년 꼬맹이가 있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연못을 정비하여 아이들에게 그 나이에 내가 이루지 못한 “학교 연못에 맘대로 진입하여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이감을 맘껏 느끼도록”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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