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경북교육정책 네트워크

리틀윙 2015. 12. 28. 08:29

경북교육정책 네트워크!
올 봄에 경북교육청의 모 장학사로부터 제안을 받고 함께 하고 있는데, 초중등 교육자 10명이 참여하고 있다. 구성원 가운데 교사는 내가 유일하고 나머지 분들은 장학사, 연구사 또는 교감이다.

오늘 모임은 경기도 운산고등학교 강범식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지만 일방적으로 설교를 하시는 게 아니라 학습자(청중)의 참여를 많이 유도하셔서 집중력을 계속 유지해야만 했다.
1교시엔 모둠활동으로 솔라리움 카드를 활용해 “현재 우리네 학교에 꼭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설명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카드를 선택했다.
나는 현재 우리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2교시부터는 교장선생님께서 내부형 공모제 교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학교를 이끌어 가시는 노하우를 설명하셨다.

그런데 어찌 이상하지 않은가?
이 교장선생님을 모신 분들은 죄다 경북 교육청 소속의 장학사(연구사)와 교감들이다. 일반적인 계산법대로라면 이 분들은 교육계의 기득권층으로서 내부형 공모제를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교장선생님을 모셔서 내부형 공모제 학교의 성공사례를 들으며 ‘옳거니’ 하는 추임새를 넣고 있는 것일까......?
.
.
27년 전 내가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전교조를 가까이 한 것은 이쪽이 합리적이고 교육적이고 또 진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제도권은 불합리하고 반교육적이고 또 천박한 보수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합법화 이후 전교조가 낡은 관성적 운동의 길을 걸으면서 보수화 되어 간 반면, 제도권은 괄목상대해졌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 교총 내에서 교총의 국정화 찬성 기조에 반발하며 “교총 개혁 총연대”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아니한가?
그런가 하면, 가장 보수적인 경북 내에서 상당수의 장학사들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 의견을 표명한 이영우 교육감의 행보에 극심한 반감을 품고서 “이런 곳에서 장학사 하는 게 참담하다. 전국 장학사 모임에 가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단다.

놀랍다. 그리고 아찔하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가 시나브로 퇴행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제도권은 이만큼 자기혁신을 꾀해 오고 있다. 오늘 모임에서 함께 한 장학사님이나 교감선생님들은 대부분 한때 전교조에 투신하거나 조합원이었던 분들이다. 혹 어떤 전교조 활동가들은 이런 분들을 ‘변절자’니 하며 그 진정성을 폄훼하거나 냉소를 보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변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변하지 않은 사람이 문제다. 세상이 변해 가는데 안 변하는 게 자랑일 수 없다. 그건 일관성이 아니라 “구태”일 뿐이다!

구태를 고집하는 태도야말로 진보가 아닌 보수 그 자체다.
징치권과 달리 제도권 교육계는 최근 십 수년 사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왔다.
물론 아직도 학교는 더 변해야 한다.
문제는!

그 변화의 담지자는 전교조가 아닌 오늘 모임을 이끈 개혁적 마인드를 지닌 제도권의 인물들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솔직히 불길하지 않다. 오히려 흥분된다.
흑묘백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명품교육’ 운운해대는 이 천박한 경북교육을 쇄신할 수 있는 주체가 전교조면 어떻고 제도권 장학사면 어떤가?

역사는 이렇게 발전하는 거다.
전교조의 구태의연한 활동가들이 뭐라 하건 간에 인간 역사는 이렇게 발전해간다.
진보진영 못지않게 보수진영의 각계각층에서 상대적으로 참신한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 “진지”를 구축하여 동시다발적으로 혁신을 꾀함으로써 어제의 그것보다 덜 추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게 그람시가 말한 역사발전의 법칙이다.

들뢰즈는 말한다, 어떠한 이질적인 기관(주체)끼리도 ‘접속’은 가능하다고.
14개 지역의 교육 권역에서 이미 ‘진보’가 제도권이 되어 있다. 적어도 교육영역에서 제도권과 운동권은 따로 있지 않다. ‘교육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또 실질적으로 활발히 소통해가고 있다.

한국사회 최악의 교육식민지인 경북에서도 그 유의미한 ‘접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내가 그 한 주체인지 모르겠다.
내 소박한 역량이 전교조에서 쓰이든 교육청에서 쓰이든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흑묘백묘!

인간세상은 "선이 악을 몰아냄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몰아냄으로써", "혁신이 구태를 극복함으로써" 발전해간다.

 

2015.12.12

'삶과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우울한 새해  (0) 2015.12.31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0) 2015.12.28
나날이 발전하는 세미나  (0) 2015.12.28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0) 2015.12.15
피장파장 전술  (0) 201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