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남자는 입이 가벼워야

리틀윙 2014. 12. 18. 08:14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1217211209229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 정말 멋있는 남자다.

저렇게 자존감이 강한 남자가 연산군처럼 포악한 여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수난을 당할 때 그 비참함의 정도가 충분히 그려진다. 사람은 자존감이 강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라 하지만 인간에게 돈보다 심지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다.

 

박창진 사무장이 국토교통부에서 첫 조사를 받은 지난 8, 조사 1시간 뒤 대한항공 임원이 박 씨를 불렀습니다. 이 임원은 국토부측이 승무원들이 작성해 제출한 사실관계 확인서가 국토부의 시간대별 항공기 동선이나 내부 상황 관련 자료와 맞지 않는다며 다시 써줄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확인서를 다시 쓰는 일이 10차례 이상 반복됐습니다. - KBS 뉴스

 

대한항공의 십상시들은 사람 잘 못 본 것 같다. 이 상황에서조차 정신 못차리고 일개 사무장은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자기네 입맛대로 사실관계 확인서를 쓰라고 하고 무슨 초등학생 받아쓰기 하듯이 10번이나 '틀린' 문장을 고쳐오게 하고. 도대체 이 나라 기업에 뿌리박힌 ‘까라면 까라’는 식의 상명하달 문화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군바리 문화?

내가 사는 구미엔 삼성/LG를 비롯한 크고 작은 기업이 많아 이런 군바리문화를 자주 볼 수 있다. 식당의 회식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성한 산꼭대기에서도 그러하다.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명산 금오산 정상에서도 회사 MT 온 사람들이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따위의 구호를 외치며 흡사 해병전우회를 방불케 하는 으샤으샤 분위기를 연출해댄다.

 

조직폭력배가 아닌 이상, 교사든 의사든 공무원이든 군무원이든 말단회사원이든 임원이든 모든 직업인은 국민의 노복이지 전제군주의 종이 아니다. 8.15 해방되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는다. 군사독재로 점철된 오욕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삼성이든 대한항공이든 이들 재벌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해 왔던가. “사유재산은 도둑질”이라는 프루동의 말이 실감나는 전형이 한국 재벌의 현주소다. 이 희대의 도둑놈들이 도둑질을 계속 해 먹기 위해 십상시들을 부리면서 자기네 치부를 틀어막으려 한다. 소인배일수록 자기 모습대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법이다. 권력과 돈에 사족을 못 써온 인간들이니 일개 사무장 따위는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십상시들과 이 남자는 격이 한참 다른 것 같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절대군주와 일전을 불사하는 이 무모한 용기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연산군 앞에서 늘 거짓 웃음으로 자기 이재를 쫓아온 소인배들은 이 용감한 남자가 흘리는 눈물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것이다.

조직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이 인화와 침묵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하모니, 조화로운 인성을 짓밟는 비정의 세계에서 그 인화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따라서 인화란 다름 아닌 전제군주와 사이좋게 지내는 인화를 말하는 것이리라. 군주가 아무리 비행을 저질러도 입 다무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지성적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의 직장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Silence like a cancer grows!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sound of silence)의 노랫말처럼 침묵의 문화란 본질적으로 암적인 것이다. 조직사회에서 침묵과 굴종이 지켜지는 것과 비례해서 조직이라는 유기체의 몸에 암세포가 번져간다. 기업이 죽어가고 나라가 망해간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봉건적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절대권력자인 오너가 폭정을 부리는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리가 없다. 이런 비지성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며, 입 무거운 것이 미덕일 수도 없다. 가부장적 속설과 달리, 남자는 입이 가벼워야 한다. 입이 가벼운 대한한공의 사무장님을 본 받자. 다음에는 삼성에서도 입이 가벼운 내부고발자들의 커밍아웃이 속출하길 바란다. 그래야 기업이 살고 이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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