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물신 속의 사람

리틀윙 2013. 2. 2. 14:01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상품의 물신성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인간을 지배하듯이, 인간이 만들어낸 돈(화폐)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물신성(fetishsm)이다. 물신성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돈의 가치에 밀려 나는데 이것이 소외(alienation)’이다. 물신성과 소외는 동전의 양면이다.

 

물신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사장되고 모든 것이 묻지 마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누가 만든 것인지 묻지 않으며, 물건에 얽힌 희노애락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내가 지불한 화폐의 가치에 비추어 물건값이 비싼지 싼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내가 물건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건 만든 사람의 노고로 인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돈 때문에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인간의 능력과 땀 그리고 애환이 화폐라는 물신의 위력에 가려져 묻지 마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사회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발동하면 물건 속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아끼는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 1978년산이다. 35년 전에 이 훌륭한 기타를 만든 사람은 지금도 살아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는 원목을 깎아 이 기타의 바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애를 썼으며 얼마나 많은 먼지를 마셨을까?

(요즘은 한국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며, 또 전세계적으로도 명기로 이름난 좋은 기타가 넘쳐나고 있지만, 옛날에는 기타 하면 펜더와 깁슨밖에 없었다. MADE IN USA 펜더 기타는 모든 기타리스트들의 로망이었다.)

이 기타는 언제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10년 전에 내 손에 건너오기까지 몇 명의 주인을 거쳤을까? 이 훌륭한 기타의 소유자는 어떤 사연으로 자기 분신과도 같은 악기를 내 놓았을 것이며, 그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검은색 바탕의 플라스틱(pick-guard)에서 흰색 부분을 보라. 원래의 디자인이 아니라 기타의 피크가 닿아서 패인 흔적이다. 기타를 많이 쳤다는 이야기다. 통기타가 아닌 일렉기타에서 이런 흔적은 연주자가 풀 스윙의 stroke 주법으로 연주할 때만이 생겨날 수 있다. 아마도 룸사롱에서 소위 오부리 음악을 했던 악사일 것이다그 당시에 대부분의 기타맨은 이런 업소의 악사들이었다.

 

요컨대, 말 못할 사연으로 점철된 이름 모를 한 악사가 애지중지하던 기타였을 것 같다. 오직 화폐라는 물신에 힘입어 내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 민망하다. 예전에 이 기타를 품었던 분과 소주 한 잔 나눌 기회가 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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