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음악 또라이들

리틀윙 2011. 11. 20. 21:06

   음악 또라이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음악 또라이들>이란 책을 재밌게 읽었다. 내 몸엔 딴따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라 이런 책을 접하면 2시간 정도 만에 단숨에 읽어치운다. 우리 시대의 9인의 뮤지션(내가 보기에 뮤지션이란 호칭은 과대포장에 가깝고 딴따라란 호명은 그 분들 입장에서 듣기 거북할 것이고 그저 음악인들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이 살아온 이야기를 실은 책인데 재밌다.

 

 

 

아마 2000년일 것 같다.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LG드림페스티벌이란 행사에 학교 밴드 아이들을 데리고 출연한 적이 있는데, 1부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한 청소년 아마추어 가수들과 댄서들이 경연을 펼치는 무대였고 2부 무대에선 인기연예인들이 출연해 이들을 보러 온 지역의 청소년들로 주변의 교통이 마비되고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출연진 가운데 한참 유명세를 타던 록 댄스 그룹으로 Y2K이 있었다. 이들이 사정상 드럼을 준비하지 못해 우리 악기를 쓰게 되었는데, 이 특별한 인연으로 우리 아이들은 무대 뒤편에서 그토록 흠모해마지 않는 스타들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잠시 후 이들이 무대에 올라갈 순서가 되었는데, 우리 아이 하나가 그 사실을 모르고 드러머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졸랐다. 무대 위에선 진행자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였기에 지금 당장 뛰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급하다는 명분으로 아무런 민원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무난하게 그 상황을 뒤로 할 수 있었건만, 그 친구는 그 어린 아이의 청을 거절하기가 미안했던지 굳이 허름한 종이에 자기 이름 석자를 다급한 필체로 휘갈겨 적어주는 것이었다.

그 장면이 그때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친구의 작은 성의가 그때까지 연예인에 대해 품었던 나의 편견을 고쳐주었다. 그 순간 문득 내 뇌리를 강타했던 생각은, 딴따라든 뭐든 정상에 설 정도의 사람에겐 뭔가 특별한 인간적 자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일반인들은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음악인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은 아마도 어린 시절 우리의 관념에 주입된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탓이 클 것으로 생각해본다. , 직업전선에서 힘든 노동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얻는 보통의 생활인들에 비해 음악 하는 사람들은 띵가띵가 하면서 쉽게 돈을 벌지 않느냐는 오해이다. 그러나 음악이든 미술이든 연기든 예술활동도 엄연한 노동이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짧은 순간을 벗어나 이들을 기다리는 삶의 뒤안길은 말 못할 사연과 마음고생으로 점철돼 있음을 알 때, 그 베짱이라는 메타포가 얼마나 허구적이며 이들의 멍든 가슴을 돌로 치는 폭력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딴따라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선량한 독자라면 누구나 이들이 탄탄대로를 걸을 때보다 실의에 빠져 방황할 때의 삶에 더 큰 공감을 가지며 마침내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설 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게 된다. 솔직히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9인의 음악인들 가운데 반쯤은 (음악 매니아를 자처하는)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며 그 나마 내가 아는 인물들도 평소에 그렇고 그런 딴따라들로 치부했던 분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치열한 삶의 편린들을 접하면서 사물에 대한 나의 지독한 아집과 편견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딴따라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갈채를 보낼 필요는 없다. 음악이 뭔지 예술이 뭔지 개념조차 품지 못하고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대중들 앞에서 기타 들고 가오 잡으며 자기만족으로 도취된 삶을 살아가는 딴따라들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그런 삶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냉혹한 실존적 삶에 부딪히면서 대부분 딴따라에서 세일즈맨으로 전향하게 된다. 삼십이 넘어 나이 사십이 되도록 딴따라로 남은 사람이 있다면, 신중현의 개념으로 가인(歌人)’이란 작위를 부여해줄 법하다. 요즘 상한가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로 나가수를 통해 성공한 늦깎이 스타 임재범이 그런 경우이다. 임재범의 다큐 프로에서 이 책에 맨 첫 순서로 등장하는 김태원이 하던 말이 기억난다. 예능프로든 뭐든 록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참여하는 것도 좋지 않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능이라는 TV프로가 흡사 원숭이들 나와서 재주 부리는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쓰잘데 없는 호박씨 까며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그런 천박한 짓거리가 대관절 '예술적 가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예능프로’라 이름하는가?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팬을 만나야 한다. 대중을 어떻게 웃길까 고민하는 것은 코미디언의 몫이다.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작곡과 연주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음악인의 책무이다. 원숭이 쇼에서 김태원을 그만 봤으면 좋겠다. 김종서도.

 

후기) 그런 점에서 임재범이야 말로 '음악또라이'의 최고 반열에 우뚝 서있는 인물인데 이 책에서 빠져있다. '또라이의 삶'과 관련하여 그 양반의 입에서 재밌는 이야기 많이 나올텐데 아마 작가가 일순위로 섭외했지만 거절했을 것이다. 진정한 또라이라는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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