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서부전선 이상없다

리틀윙 2011. 11. 7. 19:05

 

<서부전선 이상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이 한 권의 소설'로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그래서 나는 독일작가 가운데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를 가장 좋아합니다.

 

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전쟁이란 것이 대관절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동명의 영화도 봤는데 1930년 작품이라 흑백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도 재밌는데 지금 제가 적고자 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이 책과 조금 다르게 그려지더군요. 영화에서는 참호 속에서 적군 병사가 죽기 전에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책에는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이 소설 속의 그 장면을 옮겨봅니다.

 

나는 커다란 포탄 구멍 속에서 등을 둥그렇게 움츠리고 있었다. 물은 양다리에서 배까지 차올랐다. 돌격이 시작되면 나는 이 물 속에 될 수 있는 대로 깊이 뛰어들어 질식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흙탕 속에다 처박을 심산이었다. 죽은 사람의 흉내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 내 머리 위로 파닥파닥 달리는 소리가 지나갔다. 1대가 지나간 것이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누군가가 지금 내가 있는 포탄 구멍에 뛰어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곧 작은 칼을 빼내어 꼭 쥐고 그 손을 흙탕 속에 감추었다. 만일 누가 뛰어들어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찔러버릴 작정이었다... ‘나는 바로 목구멍을 찔러 큰소리를 지를 틈도 주지 않겠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양쪽 다 무서워서 서로 부둥켜안고 넘어질 때 나는 승리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중략 -

... 이 사나이의 아내는 지금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를 것이다... 겉모습으로 보아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낼 것 같은 사나이다......

... 만일 내 어머니가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이 죽은 사나이는 틀림없이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었겠지. 만일 이 사나이가 2미터만 더 왼편으로 달려갔더라면 지금쯤 저편 참호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다시 새로운 편지를 쓰고 있었을 텐데...

 

 

 

"이봐 친구, 나는 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니야. 만일 자네가 다시 한 번 이곳에 뛰어들어온다 해도 자네가 나를 죽일 심산이 아니라면, 나는 자네를 결코 죽이지는 않겠어. 그러나 자네는 나에게 있어서 처음에는 단지 적이라는 관념뿐이었어...

" 전우여, 부디 용서해 다오. 우리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 자네들의 어머니도 우리들의 어머니와 똑같이 근심하고 있다는 것, 우리들은 똑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똑같은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우여 부디 용서해 다오. 어째서 자네는 나의 적이 되었던가. 우리들이 만일 이 무기와 이 군복을 벗어던져 버린다면 자네도 카친스키나 알베르트와 같이 나의 형제가 될 수 있었을텐데...

나는 자네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주겠다. ... 자네의 아내는 결코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돼. 나는 자네의 아내를 돕겠어. 자네의 양친도 자식들도.... 나는 그 사진들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부유한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일 앞으로 돈을 벌게 되면 익명으로 이들에게 돈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봐, 전우여, 오늘은 자네 차례고, 내일은 내 차례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살아 남게 되면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분쇄한 것과 맞서 싸우겠다. ... 나는 자네에게 약속한다. 전쟁은 두번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고...

중략 -

지금까지 이글을 써 내려온 파울 보이머 군도 마침내 191810월 어느날 전사했다. 그날은 온 전선에 걸쳐 극히 평온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음. 보고할 사항 없음."이라고 하는 문구가 씌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엎드린 채 쓰러져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뒹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이러한 최후를 오히려 만족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은 그러한 침착한 얼굴이었다.

 

생각해봅시다

- 전쟁터엔 어떤 계급의 젊은이들이 끌려가는가?

- 조국의 영광을 위해 맹목적으로 총부리를 적에게 향하는 병사의 애국심은 합리적인가?

- '람보'는 영웅인가? 반대편 입장에서 보면 살인마일 수도 있지 않은가?

'람보'에게 희생당한 적군들은 죽어 마땅한가?

'람보'의 영웅적인 행동이 미국 본토의 민중에게 어떤 이로움을 가져오는가?

- 아군이 전쟁에서 이길 경우 기뻐할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 전쟁에서 비롯되는 행불행은 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간의 문제가 아닌가?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든 병사들의 신세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속의 검투사나 투견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투견 중에 아군, 적군 ; 좋은 사람, 나쁜 놈이 있을 수 없겠죠. 굳이 정신분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쟁 그 자체는 당사자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죄의식을 안겨다 준다는 점에서 아군병사와 적군병사,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비극이라는 점을 레마르크의 훌륭한 소설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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