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나들이(TRAVEL)

일본 기행

리틀윙 2020. 4. 4. 01:33

일본탐방기-2) 멀고도 가까운 나라


제법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디저트로 사이다를 주문했다. 사이다 이름이 ‘미츠야’인데, ‘석 삼(三)’자가 눈길을 끈다. 


잘은 모르지만, 일본 이름에 ‘미츠(三)’로 시작하는 게 많다. 전범 기업 ‘미츠비시(三菱)’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기업 이름 가운데도 ‘三’으로 시작하고 두 음절로 된 것이 많다.

삼양(라면), 삼풍(백화점), 삼미(슈퍼스타) ...... 그리고 세계적인 한국 기업 “삼성”이 그렇다.


확신컨대, 이러한 한국 기업의 명명(命名)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왜색 분위기의 이름들이다.


‘왜색’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색’이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문화 속에 일본의 영향이 깊숙이 자리해 있기 때문에 굳이 어떤 이름이 일본식이니 아니니 따지는 자체가 난센스이다. 이를테면, ‘축제’라는 낱말이 일본식이니 ‘대동제’라고 쓰자는 것은 지나친 국수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명명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어떤 낱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의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워온 수학, 영어, 과학은 물론 국어 문법에서도 일본인이 만든 용어(terminology)를 우리가 쓰고 있다. 기하학, 방정식, 부정사, 정관사, 만유인력, 적자생존 등등은 일본인이 만든 개념이다. 비고츠키는,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라 했는데, 일본인이 만든 낱말을 우리가 쓰지 않으면 우리 의식의 소우주는 붕괴된다.


사진-2에서 ‘요금정산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까닭은 일본인이 쓰는 말을 우리가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 옆에 ‘時間’이라는 낱말은 중국인이 만든 것을 우리와 일본이 같이 쓰는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의 정신세계(소우주)는 한자를 공통분모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쉽게 통할 수 있다. 이것은 축복이다. 한자를 매개로 세 나라 사람들의 소우주는 긴밀히 공유될 수 있다. 이를테면, 도(道)라는 개념을 서양 사람들과 공유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미국인들보다는 일본인들과 더욱 동질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일본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은 현재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한국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점이다. 일본 식당에 기무치(김치)와 된장찌개가 우리말 발음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TV에서는 한국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가라오케에서 일본인들은 한국 가요를 능숙한 발음으로 즐겨 부른다. 젊은 층에서 BTS에 열광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중장년층 사람들도 한국가요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요컨대,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적대시하고 일본문화에 반감을 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고조되어 전 국민적 차원에서 반일 정서가 확산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부메랑 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나쁜 아베 정부에 굴복하거나 끌려가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의 불매운동은 정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차원에서 그러해야 한다. 우리의 반일정서는 일본정부를 향해야지 일본 국민을 향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말은 상투적인 수사일지언정 진실을 정확히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감스러운 나라이지만, 사실 정서나 의식 면에서 우리와 가장 닮아 있고 그래서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국민이 일본인이다. 극우 아베 정부는 미워하되 일본인은 미워하지 말자.


“제가 찍어드린 사진을 지금 확인해보시고 혹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에게 우리도 이런 친절을 베푸는 이가 많아지면 정말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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