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노동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번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어원서를 읽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몇 배 더 어렵다. 영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말 실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정 서적의 번역은 그에 관한 우리 말 지식이 머릿속에 준비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예전에 스파이크 리 감독의 <모 베터 블루스> - 브랜포드 마르살리스의 유명한 재즈곡 제목인데, 스파이크 리는 흑인을 예찬하기 위해 백인을 비난하고 아시아계(특히 한국인) 인종을 비하하는 영화를 많이 찍는다. 브랜포드의 음악은 그의 동생 윈턴 마르살리스에 비하면 재즈가 아니라 ‘딴따라’다. - 를 보다가 심각한 쓴웃음을 떠뜨린 적이 있다. 중간에 ‘R&B’에 관한 대사가 나오는데, 자막에서 ‘R과B’라고 번역된 것이다. 번역자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비슷한 예로, 어제 파울루 프레이리의 번역물을 읽다가 또 빵 터졌다. ‘학급갈등’이란 말이 등장한다. 프레이리의 정체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한 단어가 얼마나 허탈한 실소를 자아내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과 영어에 대한 약간의 센스를 가진 사람은 굳이 원서를 대조해보지 않더라도 그 말에 해당하는 원어가 ‘class conflict’라는 것도 감 잡을 것이다. ‘계급갈등’이라 할 것을 ‘학급갈등’으로 옮겼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역자는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신데, 다시 말하지만 영어번역은 영어실력보다 해당 한국어 지식 역량이 훨씬 중요하다.
오역과 관련하여, 이번엔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한 사례를 지적하고자 한다. 비고츠키의 책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서도 오역이 한 군데(최소한) 발견된다. 참고로, 정회욱이 옮긴 이 책은 번역 수준이 상당하다. 그러나 이 책 100쪽에 나오는 “만일 사물의 본질이 그것의 겉모양과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피상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는 부분은 오역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옮길 것이다. “만일 사물의 본질과 현상이 일치한다면 어떠한 과학도 필요 없을 것이다.” ‘겉모양’에 해당하는 말은 ‘appearance’인데 철학용어로 이 단어는 마땅히 ‘현상’으로 옮겨야 한다. 더 심각한 실수는 ‘피상적’이라는 부분이다. ‘superfluous(여분의, 과잉된, 불필요한)’을 ‘superficial(피상적인)’으로 잘 못 읽은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실수라 할지 모르지만,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늘 주지시키듯이, “실수가 실력이다!” 마르크스의 이 훌륭한 한 문장을 평소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superfluous’를 ‘superficial’로 오독하는 해프닝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번역의 완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내가 번역하면 그 만큼 해낼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역자의 실수를 찾아낸 것은...... 비고츠키가 설명해준다. “자기조절보다 타인조절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무리 완성도 높은 번역서라 할지라도 크고 작은 오역은 불가피하다. 올해 안으로 나도 역서를 한 권 낸다. 우리 연구소(사람 대 사람)에서 프레이리 책을 내는데 내가 책임번역자이다. 그런데 이 책, 무척 어렵다. 그러나 정말 좋은 책이다. 어려운 책을 독자들이 쉽게 읽도록 우리말로 옮기기 위한, ‘번역’이라는 이름의 지적 활동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과업이다.
지식노동과 관련하여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번역하는 일이고, 가장 무모한 일은 해당 한국어 지식도 갖추지 않으면서 전문서적을 번역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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