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이란 화두로 맨 먼저 소개하고 싶은 팝 뮤지션이 있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현존하는 팝계 최고의 섹스 심벌 비욘세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히로인으로 섬겨온 한 여가수를 다음과 같은 멘트로 소개한다.
지금 제가 서 있는 바로 이 무대에서 노래했던 팝의 역사를 장식해온 여가수로 마할리아 잭슨, 레나 혼, 다이아나 로스, 자넷 잭슨, 휘트니 휴스턴 등등이 있지만... ‘전설’로 불리어 마땅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팝의 여왕을 기립박수로 맞아주십시오!
Ike & Tina Turner는 티나와 터너의 듀엣 밴드이지만 주목의 대상은 당연히 티나 쪽이었다. [매드맥스3] 따위의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티나는 은막 또는 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 자체는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도 어둡고 힘겨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아이크 터너를 만나 스타가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숱한 눈물과 말 못할 사연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팝 역사상 최고의 여성 소울 가수 티나 터너(Tina Turner: 1938. 11.26 ~ )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의 한 시골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는데, 원래 이름은 애너 매 블록 Anna Mae Bullock이었다. 애너의 집안은 형편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런 대로 먹고살기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님이 자주 심하게 다퉜다는 것인데, 애너가 10살 되던 해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새 삶을 찾으러 집을 나선다. 그 후 새로 들어온 계모의 등살에 못 이겨 애너는 언니 앨런과 함께 반 강제로 집을 나오게 되지만, 두 자매는 친척과 생모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된다. 애너는 고향 테네시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이 꿈은 세인트루이스의 클럽에서 만난 한 남자와의 인연을 통해 현실이 된다.
언니 앨런은 맨하탄이란 클럽의 단골손님이었다. 하루는 앨런이 음악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라이브 음악을 들려 줄 생각으로 이 클럽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애너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아이크는 애너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이름부터 자신의 취향과 의도대로 고쳐 버렸으며, 애너는 모든 것에 그저 순순히 따를 뿐이었다. ‘블록’이란 성(姓)이 ‘터너’로 바뀐 것은 당연하나 이름(first name)이 ‘애너’에서 ‘티나’로 된 것은 아이크가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전설 속에 나오는 정글의 흑인 여왕 ‘쉬나 Sheena’를 본따 ‘티나 Tina’가 된 것이다. 실제로 아이크와의 만남 이후 티나가 정글이 아닌 무대에서 그 이름에 걸맞듯 야성미를 자랑하는 팝의 여왕으로 등극한 사실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짧은 기간에 티나가 팝계에서 디바로 떠오르게 된 것은 야성적인 캐릭터 외에도 타인은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대담한 관능적 무대 퍼포먼스을 통해 가능했다. 쇼의 클라이막스에서 티나가 성행위를 연상하는 도발적인 교성을 남편 아이크와 주고받음으로써 파격적인 묘사를 해나가는 것은 이들 부부들만의 특이한 무대 연출법이었다. 한 예로 오티스 레딩 Otis Redding이 1965년에 발표한 훌륭한 R&B 곡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을 아이크와 티나가 라이브 무대(1968)에서 부를 때, 곡의 말미에서 이들 부부는 원곡에 없는 외설적인 내용의 송 애들립을 서로 주고받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티나 부부는 1956년 [River Deep, Mountain High ; 이 곡은 명 프로듀서 필 스펙트 Phil Spector가 제작한 첫 명작이다]와 CCR의 [Proud Mary]를 리바이블 히트 시키면서 미국내는 물론 영국에까지 이름을 떨쳐 나간다.
계속해서, 팝스타를 떠난 인간 티나 터너의 내면세계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위키피디아에선 티나가 침례교에서 불교신자로 개종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그녀가 믿은 종교는 남묘호렌게쿄이다. 청교도 국가에서 그것도 대중의 인기를 생명으로 하는 팝스타가 이 이상한 신앙을 품게 된 이유야 알 길이 없지만, 그것은 그만큼 티나의 인생이 말 못할 사연과 한숨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티나 터너의 자전 영화를 보면, 스타로서 하등의 생활고를 겪을 일이 없을 그녀가 왜 저토록 야만적인 폭력남편과의 관계를 좀 더 일찍 청산하지 않고 20여 년이란 긴 세월을 참아왔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생각건대, 어린 시절 줄곧 어머니의 불행한 삶을 지켜봄으로써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에 익숙해 있었던 탓일 것 같다. 불행은 늘 대물림되는 법이다. 딸의 인생은 어머니의 것을 닮는다는 말은 티나 터너의 경우 잘 맞아 떨어진다. 아무튼 팝 가수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티나는 분명 미국적이기보다는 여필종부의 동양적인 여성에 가깝다는 유추를 해본다. 그녀가 동양에서 건너온 괴상한 종교에 의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내면세계가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티나 터너가 팝계에서 보기 드물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이라는 것이다. 평탄치 않은 시골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았고, 독특한 자신의 소질과 개성을 한껏 발휘하여 마침내 팝의 여왕이 되었다. 이에 우리는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과 찬사를 보낼만 하다 하겠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티나 터너를 높이 사고 싶은 것은 그녀가 중년의 인생에 보여준 용기 있는 선택에 관해서이다.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와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이룩한 그녀의 삶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아래는 홀로서기 이후 티나가 독자적으로 발표한 힛트곡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가사의 일부이다. 원문이 주는 생생한 뉘앙스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서 원문을 함께 싣는다. 사랑이란 엄청난 과업을 쉽게 생각하는 이들은 남과 여라는 입장의 차이에 따라 서로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주목하기 바란다.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You must understand
That the touch of your hand
Makes my pulse react
That it's only the thrill
Of boy meeting girl
Opposites attract
It's physical
Only logical
You must try to ignore
That it means more than that
Oh what's love got to do, got to do with it
What's love but a second hand emotion
What's love got to do, got to do with it
Who needs a heart
When a heart can be broken
도대체 이게 무슨 사랑이에요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당신 손이 내 몸에 닿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그것은 소년이 지독히도 싫은 소녀와 마주할 때 느끼는 소름, 바로 그것이에요
신체의 반응은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요
우리 사이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으려니 하는 착각은 마시길
도대체 이것이 무슨 사랑인가요
사랑이란 단지 부차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아요
대관절 사랑이란 게 뭡니까
마음(heart)이 망가진 이에게 창백한 사랑(heart)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사랑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그저 우리들 관념 속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주고받거나 눈 오는 날에 손잡고 영화관을 찾으면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선남선녀의 이러한 장밋빛 애정관은 결혼과 더불어 그 신기루가 눈 녹듯 사라진다. 결혼 후에도 평생 이런 관계가 유지된다면,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일 것이다. 눈물과 한숨 그리고 결혼에 대한 후회로 점철되지 않은 ‘여자의 일생’이 이 지구상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 특히 먹고 살기 힘든 삶의 울타리 내에서 그 가능성은 현격히 줄어든다. 가난에 허덕이는 삶 속에서 여성은 이중으로 고통 받는다. 부르주아 위주의 불평등한 사회제도로 인한 고통도 고통이지만 가정 내에서의 남근에 의한 착취가 더 심각하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듯, 경제적 불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성인 노동계급은 직업전선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의 가내 노예인 여성을 향해 풀 수 있지만 그 역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 속에서 남성이 여성을 향해 퍼붓는 욕설과 고함, 술주정과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도박과 알콜중독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남성과 어떻게든 애들과 함께 바둥바둥 버텨보려 애쓰는 여성, 이 둘의 관계야말로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 관계'의 전형이다. 이 글을 쓰면서 에밀 졸라의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한 사실적 표현에 숨죽이고 읽었던 소설 <목로주점>을 다시 펼쳐 보았다. 그 속에서 비운의 여주인공 제르베즈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이지 나는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에요. 내 소원이라야 착실하게 일하는 것과 세 때 끼니를 거르지 않는 일...... 그 이상은 필요 없어요.
또 한 가지, 매를 맞지 않는 일. 싫어요, 매를 맞는 것은 지긋지긋해요...... 그뿐이에요. 정말이지 그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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