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읽기

아이 속의 가부장 권위주의

리틀윙 2018. 1. 26. 16:26

15년 전 구미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다른 학교에 출장 갔다 마치고 나오다가 학교 문구점 앞에서 5살짜리 꼬맹이를 칠 뻔했다. 학교 앞 골목길이니 속력을 내려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천천히 가던 중 꼬맹이가 내 차로 뛰어 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내 차에 옷깃조차 스치지 않았건만 아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통에 졸지에 가해자가 되었다. 아이랑 의사소통이 안 돼서 내 차에 몸이 닿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주위에 아이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아이 부모와 연락이 닿았다.

 

놀란 기색으로 허급지급 현장으로 달려온 아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선 병원에 가서 진단 받기로 하고 내 차에 두 사람을 태워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아이 엄마는 뒷좌석에서 연신 좀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으시는데, 나를 향한 원망보다 자신을 향한 자책성 독백이 더 많았다. 아이가 어린 관계로 어제까지는 늘 자기가 손을 잡고 바깥에 나왔는데 하필 오늘 처음으로 아이 혼자 내보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운전자의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피해자 측(, 부모)의 기질과 성향이다. 가해자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는 멘트도 그렇고 어법 구사 능력이 다소 어눌해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그리 센 분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일단 안심이 되었다.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CT 촬영을 한 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아이 아빠가 도착했다. 자신의 말로 공장에서 일하다 아내의 연락을 받고 오는 길이라 했다. 나로서는 넘어야 할 더 큰 산이었지만 아이 아빠는 아이 엄마보다 더욱 수월했다. 그냥 수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다그치면서 내 편이 되어 줬다! 검사 결과가 이상 없다고 나오자 남편이 아내보고 하는 말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 () 선생님이 너 때문에 더 놀라셨겠다!”

 

이 분은 그 다음 날 모든 것을 종결짓는 전화 통화를 할 때까지 꼬박꼬박 나를 이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것은 교사라는 신분에 대한 존중의 태도였다. 교통사고에 연루된 가해자인 사람을 향해 보이는 그 비범한 매너가 고마웠고 같은 남자로서 호감이 갔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엔 어떤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모르는 남성 이웃을 향해서는 그렇게 통 큰 배려를 베푸는 분이 자기 아내를 향해서는 가부장 권위주의가 너무 심한 점이다.

 

세월이 흘러 그때 그 사고가 난 인근 학교에 지금 근무하고 있다.

우리 학년에 카리스마가 아주 강한 남자 아이가 있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굉장한 말썽꾸러기인데 놀랍게도 아이들 세계에선 인기와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 아이 세계의 절반인 남성아이집단에서만 그러하다. 여성아이들에게 아이는 원성의 대상일 뿐이다. 여자 아이들을 향해서는 거친 욕설을 구사하며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ㅅㅂㄴ라는 표현은 3학년 꼬맹이가 구사할 수 있는 수사가 아닌데 아이는 어떤 경로로 이 과도한 언어를 학습한 것인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으로 아이는 엄마의 말은 무시해버리는데 아빠는 엄청 무서워한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여교사의 말은 무시하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한다. 아마 평소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는 것을 아이가 그대로 배웠을 것이고 엄마 또한 일조했을 가능성이 많다. 아이의 어떤 행동에 엄마가 제재를 가할 때 아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는 대치국면에서 엄마와 아이의 기 싸움에서 엄마가 밀림으로써 아이 내면에 남성우월주의가 고착되어 왔을 것이다.

 

이 아이를 보면서 15년 전의 그 남자가 그대로 오버랩 된다.

두 사람의 특이한 공통점은 남성과 여성에게 대하는 태도나 호의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현상이 목격되는 장소가 일치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학구는 서민아파트 밀집단지인데, 우리 학교 학부모 가운데 ()’자 붙은 직업은 거의 볼 수 없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으로서 공장에 2교대 하며 부모 가운데 한 분은 아침에 아이 얼굴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지닌 사람은 없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학습의 결과이고, 학교나 사회생활보다는 어릴 때 가정에서 학습될 가능성이 높다. 15년 전이니 지금 스무 살쯤 되었을 그 남자 아이가 지금 스무 살쯤 되었을 것 같다. 그런 가정 배경에서 자란 아이가 여성을 향해 어떤 인식을 학습해 갈지 쉽게 짐작이 된다. 그 아이보다 10살 더 어린 우리 학교의 아이도 이러니 말이다.

 

15년이면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 인식은 엄청 많이 변했다. 요즘 젊은 부부교사들을 보면서 그런 변화를 많이 체감한다. 현재 50대 부부교사 가운데 최선의 남편도 지금 최악의 젊은 남교사보다 못할 것이다. 젊은 부부교사에 보편화된 진보적 성평등 감수성의 원인이 무엇일까? 지적 수준과 관계있는 것일까? 아니다. 나도 그렇고, 우리 세대의 젊은 교사들도 지적이다. 성평등 의식은 임용고시 따위를 통해 길러지는 게 아니다. 가정배경이 절대적이고 가정배경에서 결정적인 것은 경제적 변인이다. 두 가지 사례를 두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같은 지역에서 15년 뒤에도 비슷한 사례가 목격되는 것이 경제적 조건과 연관된 가정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가난한 집 남자 아이들이 남성 또래에겐 매너 좋고 여성 또래에겐 폭력적인 마초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 성평등 의식은 가정배경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학교교육의 영향도 중요하다. 특히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 특히, 가난한 학구의 학교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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