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론

전교조 여성위 유감

리틀윙 2020. 4. 4. 01:16


배이상헌 교사가 성평등 수업에서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줄 때 학생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본인도 예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걸 그룹의 선정적인 춤을 좋아하고 또 따라 하기까지 하는 여학생들이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 것은 사실 모순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은 그대로 학생들의 왜곡된 성정체성을 반영한다. 


이 두 계기는 모두 “과감한 성적 자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질적인 면에서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걸 그룹의 춤은 남성의 관음 욕구를 부추기는 점에서 “가부장적 음란 자극”이고, ‘억압받는 다수’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영화는 “여성우위의(feminist) 급진적 자극”이다. 배이상헌 교사를 직위해제 시킨 광주 교육감께서 “배이 교사가 더러운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고 진노하셨다지만, 진정으로 더러운 자극은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걸 그룹의 춤 동작이다. 만약 이 영화가 만들어진 프랑스에서 중고생이나 초등학생까지도 학교 장기자랑 무대에서 걸 그룹의 쩍벌 춤을 따라 하도록 방치한다면 학교장과 교육감이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음란 자극은 허용하고 급진 자극은 엄금하는 사회와 그 반대의 사회 가운데 어느 곳이 사람 사는 세상에 가까운가? 단호히 말하건대, 그 판단은 교사의 몫이지 학생의 몫은 아니다. 교사에게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유도 이런 민감하면서도 중대한 사안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학생을 바르게 이끌라는 뜻이다.


성 평등 세상 건설을 위한 전문적인 식견(=페미니즘)을 교육관료들에겐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발 더 양보하여, 일부 여성단체가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실천에 대해 교육청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운동진영에서 여성해방의 전위를 자임하는 전교조여성위에서 배이상헌 교사의 문제를 스쿨미투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단호히 말하건대, 이것은 정상적인 여성운동이 아니다. 전교조 여성위,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짚어 보자.


첫째, 성 평등한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급진적인 자극을 투입한 교사가 "남성"이고, 그 자극을 불편하게 느낀 학생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생을 옹호하고 교사를 범법자로 몰아가는 전교조 여성위의 태도는 조악한 "진영논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배이 교사가 여학생의 신체에 옷깃이라도 스쳤나 하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스쿨미투가 성립한단 말인가? 만약 여교사가 배이 교사와 똑같은 일로 고초를 치르고 있다면, 여성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방어에 나섰을 것이다. 내 말이 틀렸는지 전교조 여성위는 답해보기 바란다. 만약 아니라면, 내 당장 이 글을 내리고 여성위원장 앞으로 사과문을 올리겠다.

진영논리는 수 년 전에 내가 전교조게시판에서 경멸조로 누차 비판했던 종파주의(sectarianism)의 다른 이름이다. 주지하듯이 종파주의(분파주의)는 진보운동진영의 독버섯일 뿐이다. 이런 비지성적이고 퇴행적인 행각은 운동진영의 역량을 분쇄하고 보수반동 세력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이다. 여성위의 이 같은 입장에 배이 교사를 직위해제 시킨 교육청이 웃음 짓고 있을 것을 생각해보라.


둘째, 일부 여성단체와 달리 교육영역에 속해 있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전교조여성위의 행보는 있을 수 없는 반교육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앞서 논했듯이, 우리 사회 청소년들은 존귀한 여성성을 남성의 쾌락을 위한 기쁨조로 전락시키는 ‘음란한 자극’에 오염되어 왜곡된 젠더 의식을 학습해가고 있다. 이런 학생들의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건강한 ‘급진적 자극’을 가하는 교육실천은 교사의 성별과 무관하게 참교육의 이름으로 널리 권장할 일이거늘 전교조여성위가 그 선봉에 설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의로운 교육실천을 한 교사에게 상을 줘도 시원찮을 텐데 어찌 스쿨미투라는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가? 그런 수업을 막는 것이 참교육운동인가?

교직은 전문직이고 전문직은 고도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한다. 비전문가인 학생/학부모와 전문가인 교사의 입장과 관점이 상충되어 법적 소송에 휘말릴 때 진보교육운동단체인 전교조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나? 

물론, 문제를 제기한 학생의 판단이 미숙했다거나 배이 교사의 수업실천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은들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그러할 뿐 이런 용기 있는 수업은 참교육의 이름으로 권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름 아닌 전교조가 이런 교사의 보호막이 되지 않으면 누가 해준단 말인가? 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에 따라 그간 조직 내에서 숱한 경로를 통해 수많은 동지들이 집행부에 배이 교사에 대한 방어를 요청했건만 여성위가 집요하게 방해해오고 있음에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덧글 기사 참조)


셋째,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평생을 교육운동에 투신한 전교조 활동가를 ‘스쿨미투’의 이름으로 내치는 것은 반인륜적인 배신행위이다.


사족이지만, 이 투박한 글로 인해 필화를 겪을 것을 각오한다. 예전에도 나는 여성해방과 관련한 이슈로 과감한 글쓰기를 실천하다가 이런저런 화를 자초한 적이 있었다. 민주노총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글쓰기였다. 구체적으로, 전교조위원장을 지낸 ㅇㅇㅇ선생님께서 통진당 국회의원(비례대표)으로 낙점될 때 전교조게시판과 통진당게시판에 비판 글을 쓰다가 후보자를 지지하는 전교조 동지들로부터 (어쩌면 지금까지도) 많은 욕을 먹었다. 내가 전투에 뛰어든 것은 많은 동지를 잃더라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전교조 출신의 교사가 금뱃지를 달고 정계에 입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조직의 영광 뒤로 어두운 곳에서 한 사람의 피해자(전교조조합원여교사)가 피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전교조가 갈 길이 아니라 생각했다. 지금 이 글도 실의에 빠진 한 사람을 돕기 위해 쓰는 것이다. 수많은 여성위 동지들과 불화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한 사람을 위해 나는 이 말을 해야겠다.


최근 우리 사회 여러 영역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는 미투 운동에 힙 입어 학교사회에서 ‘스쿨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양심이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금 배이 교사에게 가해진 직위해제는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정 폭력일 뿐 스쿨미투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전교조 여성위는 가부장 한국사회에서 모처럼 찾아온 스쿨미투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일념으로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동지의 고귀한 참교육실천을 폄훼하는 것은 물론 그 동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에 나는 분노해마지 않는다.

손익계산서에 입각해 운동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식이다. 선량한 한 사람의 피눈물을 대가로 어떤 집단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자체로 그것은 진보조직이 추구하는 대의를 거스를 뿐이다. 조직을 배반하고 참교육에 위배되고 소중한 동지에게 쓰디쓴 배신을 안기는 심각한 반인륜적 부조리일 뿐이다.

전교조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여성위에 각성과 함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하며 글을 맺는다.


2019.1.1.